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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후기

Why Fish Don't Exist (Lulu miller, 2021) 리뷰

편의상 나의 취미는 독서라고 말하기는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양질의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고 발견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내 기준으로 양질의 텍스트란 다음 조건을 만족하는 글이다. (장르는 소설, 시, 에세이, 논문, 탐사보도 뭐든 상관 없다.)

1. 지적으로 혹은 삶의 어떠한 영역에 호기심과 파동을 일으킬 것.

(개인적인 경험을 서술함으로서 인생의 한 측면을 들여다 볼 수도 있고, 어떠한 이론에 대한 깊이있는 탐구로 지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2. 주요 명제, 혹은 그를 설명하는 시각이 편향되거나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담고 있지 않을 것.

 

보통은 플롯을 아예 창작하는 문학이 아니라면 주제가 정해져 있는 책- 특히나 에세이나 논픽션에서 새로운 방식의 서술은 정말 어렵다.

그러나 이 책을 발견하고 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으며, 최근 몇 개월간 일어난 일 중 가장 의미 있었던 것이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라고 느낄 정도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파악하면서 읽는 것이 가장 강한 여운으로 남는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건은 서술하지 않고, 중심 주제에 관해 평소 내가 하던 생각만 적어 보도록 하겠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는 세계의 복잡성은 이성 너머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보고 그것들을 분류, 재가공하는가?

본인만 해도 하루에 수십 번씩 엑셀 파일의 형태로 온갖 숫자와 정보를 보고, 여러 방식으로 편집한다. 이 과정에서 확실성과 객관성은 미덕이며, 의견에는 언제나 숫자가 따라붙어야 한다. 아마 대다수의 직장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업무를 진행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숫자와 체계들이 이 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방식은 아닐 수도 있다. 확실한 논리를 짓는 과정에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많은 누락과 오판이 있으며, 따라서 현상에 대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유려한 말장난에 가까운 상황이 발생한다. 체계화에 몰두하다가 지금 발 밑에 지나가는 단순한 진실을 놓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현대 조직은 위계가 존재하고 정량을 기반으로 한 목표지향적 평가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에(시대가 변하며 BSC나 OKR에 이르기까지 버전의 다양성은 있겠지만..) 이러한 관점은 종종 의미가 없거나 비객관적인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이성과 질서에 기반한 합리주의적 관점은 분명 우리의 인식에 유의미한 분류 기준을 제시하지만 편리하고 명확하다고 해서 그 기준을 유일한 척도로 여기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인식에서 빚어낸 정보는 다만 참고할 뿐이며, 인간은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틀린다는 것을 인정해야 실질적이고 소중한 진실들을 알아차릴 수 있다.

 

세계는 생각보다 더 이해할 수 없으며 종종 아름답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우리 발 밑에 가장 단순한 것들조차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리리라는 것. 진보로 나아가는 진정한 길은 확실성이 아니라 회의로, "수정 가능성이 열려 있는" 회의로 닦인다는 것."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1), P.205

+) 티가 잘 나지는 않지만 나는 간혹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에 고생하곤 하는데 이는 '틀리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과도 일부 맞닿아 있다. 혹 나의 강박을 이해하거나 유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견고한 질서는 많은 것을 가릴 수 있다. 경험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