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예전 작품 특유의 창의력과 생동감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프레스티지" 가 그랬고 코엔 형제의 "바턴 핑크(Barton Fink)" 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훌륭하다고 느낀 포인트는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굉장하다고 생각했던 포인트와 비슷하다. 스토리라인을 보면 살인사건에 휘말린 작가의 이야기지만, 이를 메타포로 한 창작에 대한 질문 던지기 & 영화 산업에 대한 블랙코미디로도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01. Life of mind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는 "Life of mind" 라는 표현이 있다. 주인공 "바턴 핑크"는 뉴욕의 극작가로, 보통 사람의 생활에도 고귀함이 있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집필하고 뉴욕에서 어느 정도의 명성을 얻는다. 그런 그는 갑작스런 제의로 할리우드 B급 레슬링 영화를 집필하러 가게 된다.
바턴이 낯선 소재와 할리우드가 요구하는 대본의 방식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찰나, 옆방의 투숙객인 찰리를 만나게 된다. "Life of mind" 라는 표현은 바턴이 그의 집필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처음 등장한다.
사실 바턴이 정말 그의 철학처럼 common man에 대한, 그들에 의한 극을 집필하고 싶었다면 찰리의 삶은 어땠는지, 그의 평소 생활이 어떤지 등의 진짜 이야기를 들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극작가의 삶에서 정신이 리드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상을 거의 주창하다시피 한다. 결국 "보통 사람을 위한 극을 쓰겠다" 는 것조차 그의 컨셉일 뿐 , 사실 바턴은 진짜 삶이나 생활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 찰리(일반인 생활을 했지만 사실 연쇄살인범)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도 자신의 머릿속에서 충분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오만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리라.
영화의 후반부에 찰리가 호텔에 불을 지르고 바턴에게 이야기를 할 때 이 내용이 가장 두드러진다. "You are just a tourist with a typewriter" 가 극작업 전반에서의 바턴의 태도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Barton: "But Why me?"
Charlie: "Because you don't LISTEN! You think you know pain? You think I made your life hell? Take a look at this dump. You are just a tourist with a typewriter and I live here. Don't you understand that? You come into my home, and you complain that I'm making too much noise. "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할리우드 제작사 사장이 바턴을 고른 이유는 영화에 "heart"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지만 실제 작가는 자신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창작에 더 몰두해 있다는 점이다. (극 종반에서는 아예 머리를 들고 다니는 연출도 있으니..)
02. Reality
잠시 멀리 떨어져서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생활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영화보다 더 희한한 일들이 많다.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영화 제작사 사장을 하고 있는 사람, 경력은 풍부하지만 지위에서 밀려나 제대로 말 못하고 화풀이 대상만 되는 사람, writer's block 때문에 주정뱅이의 삶을 살고 있는 유명 작가, 보험 판매원처럼 보이지만 사실 신분세탁을 한 연쇄살인마 등.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그림의 상징도 흥미롭다. 해변에 앉아 있는 여성을 그린 매우 진짜같은 그림인데, 그림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극의 종반에 이 그림의 모티브가 되었을 진짜 장면이 나온다.
생각을 상징하는 "상자"를 계속 들고 다니는 바턴이 현실을 목격하게 되는 장면은 그 비유 자체로 흥미로운 연출이다.
생각과 현실의 관계는 복잡하지만, 좋은 fundamental (Reality) 을 무시하고 좋은 컨셉이나 상상이 발현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생각한다.
글에 담기에는 거의 리포트 길이가 될까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상징들 위주로만 담았지만, 극 전개나 디테일, 미술에 대한 신선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코엔 형제의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좋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순수악에 대한 질문을 던졌듯, 바턴 핑크에서는 창작과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니 이 모호함을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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